수술 직후부터 독일에 엄청난 더위가 찾아왔다.
2년 전에 수술했을 때도 겁도 없이 여름에 수술했다가
선풍기 하나 없는 독일 병원에서 엄청 고생을 했는데
벌써 까먹고 이번 수술을 또 여름으로 잡았다.
6월이면 독일 여름은 아직 선선하지
그렇게 생각하고 날짜를 잡았는데 껄껄.
수술 2 - 3일 후에 얼굴은 퉁퉁 부어오르고 뜨겁고
날씨도 너무 덥고 온 몸에 힘이 빠져서 잠만 잤다.
잘 때는 목 통증 그리고 붓기 때문에 바로 자기는 힘들어서
베개를 두 개 합쳐서 머리를 조금 높게 두고 잤다.
목이 왜 이렇게 아픈가 싶어서 검색을 해봤다.
전신 마취를 할 때 기도 삽관을 하는데
그게 목구멍 표면을 다 긁어놓는 것 같았다.
목 안을 누군가가 사포로 계속 긁어내는 듯한 통증에 비하면
입안에서 실밥들 주위가 따끔거리는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3 일차부터인가는 목 통증이 사라져서
음식을 잘 삼킬 수 있게 되었다.
모밀국수도 먹고 수박도 먹고 계란찜도 술술 먹고.
목 통증이 가시니까 갑자기 긍정적인 기운이 나면서
양악 수술에 비하면 이건 정말 귀여운 버전의 수술이군
이런 생각까지 했다.
사실 핀제거 수술도 수술이고 수술 당일부터 5일 정도는
나름 힘들었지만 양악 수술이 너무 쇼킹했었기에
이 정도는 뭐 하며 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
5 일차부터는 붓기가 가라앉기 시작하고
7일 차부터는 먹는 것도 정말 많이 편해졌다.
물론 딱딱한 음식이나 매운 음식에 도전할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그런 것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지난 번처럼 뼈에 손을 대는 수술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쫄보니까 무서워서 그냥 국수 먹고 계란찜 먹고 미역국 먹고
딱딱하고 매운 음식을 피할 뿐이었지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었다고 봐야 ㅋㅋㅋ
2주가 지나서 실밥을 제거하러 갔다.
수술의 하이라이트 실밥 제거!
마취 스프레이 없다고 안 뿌려주면 어쩌나 긴장하면서 기다렸다.
예약 시간은 1시 반인데 의사를 만난 시간은 3시 반쯤.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시스템이지만
처음에는 예약 시간에 맞춰서 갔는데 삼십 분이 지나도
내 이름을 안 부르는 것이 이상해서 물어봤었다.
간호사는 예약 시간은 그 시간에 의사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때부터 의사가 너를 봐줄 틈이 생길 수도 있는 시간이라 했었지.
이제는 보통 예약 시간에서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려야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짐작하고 간다.
마취 스프레이를 뿌리고 담당 의사가 아니라
이제 막 환자를 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사가
쏘리 쏘리 오오 를 연발하며 실밥을 제거해줬다.
마취 스프레이가 제 몫을 잘했는지
몇 번 빼고는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담당 의사는 혹시 다시 윗 턱에 있는 핀을 제거하고 싶으면
다음에 다시 한번 열어보자고,
그때도 혹시 뼈가 안 붙어있으면 이렇게 저렇게 어쩌고 어쩌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제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수술을 안 하고 싶어서 괜찮다고 말하고
마지막 진료를 마쳤다.
이 년 반 정도 열심히 드나들었던 샤리테.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후련하다.
이제 가능하면 정말 다시 오고 싶지는 않아아아
수술 이후 가장 변한 것은
똑바로 다물 수 있게 된 입.
그리고 내 몸의 모든 부분들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에
무한히 감사했던 마음을 갖게 된 것.
물론 그 마음도 많이 옅어졌지만,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끗!
'Berlin > Berlin_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외생활] 어디에서 살까 - 결국 무엇이 중한지의 문제 2 (2) | 2023.03.08 |
---|---|
[독일에서 양악수술] 부작용이라면 부작용 그리고 한탄 (0) | 2022.08.25 |
[독일에서 양악수술] 핀제거 수술 1 (0) | 2022.07.10 |
[20220206] 내가 코로나라니!! (1) | 2022.01.26 |
[20211028] 신나는 독일 병원 투어 - 평발, 턱관절 장애 그리고 염증 (0) | 2021.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