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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Berlin_life

[20230826] 내가 너를 너무 변하게 한 건 아닌지

 
 
 
 
우리 부부는 보통 토요일 점심 식사 전 아니면 후에 집에서 가까운 리들에 가서 장을 본다.
점원의 실수로 몇 번 돈을 더 냈다가 돌려받은 경험이 있어서, 장을 보고 나서는 영수증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은 영수증을 살펴보는데 자두 두 개 가격이 따로 찍혔고, 거의 똑같은 크기의 자두인데 하나는 40센트, 하나는 1.5유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리들에 물어보러 들어갔다.
계산대 하나만 열려 있고, 사람들이 꽤 줄을 서 있었고 다른 점원들은 없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얀에게 그냥 가자고 했더니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봐야지 하면서 결국 1.1유로를 받아 나왔다.
솔직히 많이 놀랐다. 우리 중에 이런 걸 담당하는 사람은 언제나 나였고, 그래서 왜 항상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나여야만 하냐고 화낸 적도 있었다. 얀은 그걸 기억했나 보다.
 
 
조용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거는 것도 안 좋아하고, 모든 일을 천천히 하고 싶어 했던 얀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할 수 있으면 지금, 빨리 일을 해결하고 싶어 하고, 궁금하면 가서 물어봐야 하고, 화나는 일이 있으면 따져봐야 하는 나 때문에.
그리고 내 옆에서 그걸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는 얀이 또 미워서 한 소리, 두 소리 하고야 마는 나 때문에 얀은 확실히 변했다.
 
 
"얀, 내가 너를 너무 변하게 만든 것 같아. 원래의 너였다면 오늘 같은 일이 있어도 절대 돌아가서 말 안 했겠지?"
"원래의 나였다면 영수증을 그냥 확인 안 했겠지.
내가 안 하면 또 너한테 한소리 들을 것 같아서 한 것도 있긴 한데, 그래도 네가 맞긴 한 것 같아. 쓸데없이 더 돈을 낼 필요는 없지."
 
 
너한테 한소리 들을 것 같아서 ㅋㅋㅋ 지구 끝까지 솔직할 사람.
얀한테 미안해진다. 그럴 때가 꽤 있다. 그러면 괜히 물어본다. 
"결혼 생활 행복하니?"
"나쁘진 않은 것 같아."
ㅋㅋㅋ 지구 끝까지 솔직할 사람.
 
 
얀은 변해왔다. 
내 투정을 듣기 싫어서건, 내가 하는 말이 맞다고 동의를 해서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다르게 행동하고 말한다.
미안하면서도 누군가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준다는 사실에 감동한다. 그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곱빼기로 감사하고 싶다.
물론 가까운 사이인만큼 이 감사한 마음은 두 배로 빨리 증발한다는 게 문제다.
 
 
얀은 얼마 전에 드디어 오른쪽 팔에 마지막 문신을 채워 넣었다.
한복은 입은 여성과 무궁화. 
정말 할 줄 몰랐는데 정말 했다. 한국인도 하기 힘들 그런 타투를 하고 왔다.
상대방의 나라에 대해서 없던 지식이, 애정이 생긴다.
얀은 그게 한국이 될 거라 상상도 못 했겠지. 나도 그게 에스토니아가 될 거라 상상도 못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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