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독일에서 (다른 유럽 국가들도 꽤 비슷한 것 같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치료를 받거나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에
내가 당부하고 싶은 것들을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1. 진료받은 후, 당일에는 추천받은 검사도 하지 말고 일단 집에 와서 생각해 보기
처음 턱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고 어찌 저찌 알게 된 턱 전문 병원을 찾아갔을 때 그 병원이 그렇게 비싼 병원인 줄 몰랐다.
의사와 오 분 가량 면담을 하고 나서 이렇게는 잘 모른다,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하면서
100만 원 가까이 되는 검사 (건강 보험료로 커버 안 됨)를 권유받았을 때
당시에 턱 문제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무서웠기 때문에 한다고 했다.
분위기도 뭔가 지금 검사를 하는 게 맞다는 쪽으로 몰아갔고, 지금 검사를 안 하면 나중에 또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냥 했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독일에서는 검사나 치료를, 특히 건강 보험으로 커버되지 않는 경우, 설명을 들은 후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무서워하지 말고 상태가 하루하루 나빠지는 병이 아닌 이상, 의사가 뭘 권해도 일단 집에 와서 찾아보고, 고민해 보는 게 좋다.
현재까지 대부분 의사가 뭔가 건보료로 커버 안 되는 뭔가를 권한 경우, 나에게 꼭 필요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2. (당연하지만) 여러 의사의 의견을 들어보기
그 비싼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후, 의사는 나에게 아주 비싼 치료를 할 것을 권했다 (거의 500만 원 정도).
이 때는 수술이 아니라 일단 턱관절을 안정화시킨 후, 수술을 해야 한다며 턱관절 안정화 치료를 권했다.
건보료를 매 달마다 엄청 내고, 또 500만 원을 내면서 치료를 받으라니 화도 나고 어이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치료를 안 받고, 다른 의사들을 만나보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도 쉽지는 않았다. 독일은 진료 예약을 하고, 의사를 직접 만나기까지 정말 오래 걸리기 때문에
3 -4 명의 의사를 만나보는데 거의 6 - 8 개월이 걸린 것 같다.
왜 턱관절 안정화 치료가 이렇게 비싼 건지, 이걸 꼭 해야 하는건지, 수술은 또 꼭 해야하는 건지
이게 당시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들이었는데, 솔직히 어떤 의사도 속 시원한 답을 주지는 않았다.
결국 네가 하는 선택이니까 잘 생각해 봐, 이 정도.
하지만 여러 명을 만나보면서 그 비싼 치료가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고,
예약을 하고, 의사들을 만나던 그 6 - 8개월 동안 이상하게 턱관절 문제가 호전되는 느낌을 받았다.
어떨 때 통증이 더 심해지고, 어떤 때는 덜 해지는지 알게 되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3. 큰 대학 병원에 가보기
여러 의사를 만나봤지만 큰 대학 병원에 가 볼 생각을 끝까지 못했다.
아마 한국에서도 대학 병원에 가본 적이 없으니, 대학 병원까지 가야 할 이유를 몰랐던 것 같다.
베를린에는 Charite라는 큰 대학 병원이 있는데,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날 Charite에 진료를 받으러 가게 된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수술 없이, 교정만으로 교합을 맞춰보자고 하는 교수님을 만나게 된다.
친절하셨고,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입 모양 연습도 알려주셨고, 바쁘실 텐데도 내 상태를 잘 봐주셨다.
물론 그 교수님이 특별하셨을 수도 있다. 그 후로 Charite에 수없이 갔지만 그만큼 친절한 교수님은 없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그 교수님과 진료를 이어가지 못하고, 그냥 수술하는 방법을 택했다.
교정하는 방법을 택하면 2년 넘게 교정기를 해야 하고, 그래도 교합이 맞춰지리라는 보장이 100%는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부정교합이 매달 심해지는 게 느껴졌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무서웠다.
가능하다면 빨리, 그냥 수술을 해서 원래 내 교합 상태로 돌아가서 음식도 마음껏 먹고 원래 턱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수술과 그 모든 과정을 거쳐온 지금은, 무조건 교정하는 방법을 택했어야 한다고 본다.
가능하면, 다른 방법이 있다면, 수술은 최후의 최후까지 미뤄두는 게 최선이다. 이게 내가 양악 수술을 하면서 얻은 교훈이라면 교훈.
4.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수술하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 말기, 특히 한국이 유명한 분야라면
독일에서 살고 있고, 매달 내는 건강 보험료가 많기 때문에 (내가 딱히 소득이 높아서가 아니라, 독일에 살면 보통은 많이 내야 함)
한국에서 수술하는 옵션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병가를 내고 갈 수 있는 있었지만, 갔다 왔다 비행기 값에 수술비를 고려하면 안 가는 게 맞다고 믿었다.
수술 후, 얼굴 모양이 변한 것에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지금은 한국에서 수술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기능적으로는 성공적인 수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의사가 정말 미적인 부분은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수술의 목적은 달성했고, 미적인 목적으로 한 수술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양악수술이 얼굴 라인을 망칠 거라고 상상도
못해봤기 때문에, 부기가 다 빠지고 얼굴 라인이 확실해지기 시작한 이후에 놀랐다.
한국에서 수술했어도 100% 성공이라는 보장은 없겠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수술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남는다.
무엇보다 수술로 미적인 요소 향상하는 걸로 유명한 나라가 아닌가!
솔직히 의사들을 만나고 진료를 받고 수술을 결정하는 과정들이 무섭고, 괴로웠다.
이 나라의 시스템을 잘 모르고, 언어도 모르고, 만나는 의사들에게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하고, 상태는 악화되기도 하고 나아지기도 했다가
모든 게 불확실한데 어떤 선택을 해도 그 결과는 내가, 내 몸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힘들어했다.
혹시 독일에서 비슷한 상황을 거쳐야 하는 분들이 있다면, 가능하다면 시간을 가지고 많이 생각해 보고 그 증상에 대해
많이 공부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의사가 하는 말들을 다 들을 필요도 없고, 하라는 검사를 다 해야 할 필요도 없다.
하루하루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빠르고 쉬워 보이는 방법이 아니라,
더디더라도 확실한 방법을 지금의 나는 선택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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