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단축근무 관련해서 업데이트가 있으니 모두 참석하라는 이메일을 CEO에게 받았다.
현재 근무 중인 회사는 이번 4월에 합류할 때부터 이미 단축근무 (kurzarbeit) 중이었고,
계약서에 사인을 할 때, 단축근무가 내년 3월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한 서류에도 함께 사인을 했다.
사인할 때는 무슨 일 년 단축근무가 말이 되냐며, 만약에 만약을 대비하는 독일인답다 생각했다.
와 만약에 만약을 대비해도 더 심한 상황이 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 중이다.
독일 정부는 보통 회사들에 일 년 동안 단축 근무 지원을 해주고,
일 년이 지나도 회사가 일어서지 못할 경우 insolvent를 하게끔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상황이 특수한 만큼 이번에는 일 년이 지나도 일 년 더 지원을 해주겠단다.
아마 곧 두 번째 단축 근무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하지 않나 짐작하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관련 미팅이 있다길래 그 이야기일 거라 짐작했다 막연히.
일 분 정도 늦게 들어간 온라인 미팅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웃음기 많고, 장난기 많은 스코티쉬 CEO가 굳은 표정으로 준비한 슬라이드만 쭈욱 읽어가고 있었다.
팀원들 중 몇 몇은 다음 달부터 단축 근무 0%로 변경이 되는 동시에 계약 종료가 될 것이고,
단축 근무 계약이 종료되는 3월 말까지 새로운 직장을 찾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 것이며,
남은 팀원들은 지금까지처럼 25% 단축 근무를 상황이 더 좋아질 때까지 이어갈 거라는 내용.
결론만 말하면 총 5명의 인원이 해고되었고, 5명밖에 되지 않지만 워낙 작은 스타트업이라
적은 수는 결코 아니었다.
나는 그 중에 하나는 아니었지만 사실 잘리는 게 나에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직을 해서 들어간 회사가 합류할 때부터 단축근무를 하고 있어서 일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임금도 당연히 줄어든 상태였다.
3개월 정도만 버티면 되겠지 하던 게 이제 일 년은 당연하고, 이 년 동안 이어질 수 있다고 하니
상당히 암담했다.
문제는 그래도 회사는 돌아가야 하기에 다들 단축 근무라고는 하지만 정해진 시간보다 더 더
많이 일하고 있었고 신생 스타트업이다 보니 항상 같은 문제에 부딪혔으며,
인력 부족, 시간 부족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는 것.
잘리면 실업 수당이 나오고 독일어도 다시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고 배우고 싶었던 수업들 지원도 될 텐데.
계속 이렇게 일하면 잘린 사람들 몫까지 더 일해야 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뭐라도 하려고 용쓰는 내가 벌써 보인다.
진퇴양난.
해외 생활이라는 게 다 이런 건가?
비자 문제, 취업 문제, 친구 사귀고, 다시 비자 문제, 이직 문제 그럼 또 비자 문제 같이 오고, 집 구하고 또 집 구하고
이제 좀 뭐 갖춰진 것 같군. 이러려고 하면 다시 다른 문제가 불쑥불쑥.
문제 해결 능력이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 정신 건강에는 좋은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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