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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Berlin_work

[독일 직장생활 - 단축근무] 단축근무라는데 단축근무 같지 않은 이 느낌은?

 

 

 

 

집에서 에어프라이어에 해 먹으면 더 맛있는 커리부어스트

 

 

 

현재 회사에 합류한 지 8개월째, 코로나로 단축 근무 시작한 지도 8개월째.

회사에서 보낸 계약서에 사인을 하던 거의 그 시점에 베를린의 많은 스타트업들이 단축 근무 (Kurzarbeit)를 시작했다.

지금 회사는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비지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어서

합류했을 때에는 꽤 충격적인 수준의 단축 근무를 하고 있었다.

 

 

단축 근무는 회사 사정에 따라 회사가 정한 비율만큼만 일하고, 회사는 그만큼의 월급만 지불한다.

그리고 나머지의 일정 부분은 정부에서 (아마도?) 주는 보조금으로 충당된다.

예를 들어, 처음 근무를 시작했을 당시, 현 회사는 멤버 전원이 계약서에 명시된 풀타임 근무 시간의 10%만 일하고 있었다.

당연히 회사에서 지불하는 월급은 계약서에 명시된 월급의 10%. 

하지만 나머지 모자란 90%의 60-67%가 정부의 보조금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계약 근무 시간의 10%만 일한다고 하더라도 통장으로 들어올 월급은 10%가 아닌 64%-70% 정도가 된다.

혹시나 부러워하고 계신다면,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이런 혜택을 위해 매달 내는 세금의 금액이 더 멋집니다.

 

 

내 계약서에 명시된 근무 시간은 주 40시간. 

혹시나 부러워하고 계신다면,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계약서에 명시된 시간만큼만 일하는 스타트업은 드뭅니다.

단축근무 10%로 인해 조정된 주중 근무 시간은 4시간. 

조.. 좋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번다. 그래 한 동안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근무를 시작하면서 스케줄을 보니 무조건 매주 참석해야 하는 미팅들만 3-4개였다.

미팅 하나에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이 넘어가고, 중간중간 유동적으로 생기는 미팅들까지 하면

미팅 만으로 벌써 4-5 시간이 간다.

미팅 시간은 근무 시간으로 쳐주지 않는 그런 시스템인 건가.

주 당 근무 시간은 당연히 적어도 10시간이 넘어갔다.

 

 

현재는 회사 상황이 조금은 회복되고, 단축근무 시간도 늘어나서 주당 10시간을 일하도록 조정되었다.

하지만 주어지는 업무들과 팀, 회사 분위기가 10시간만 일할 수는 없게 했다.

대충 하면 10시간 안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는 또 싫었다.

이걸 느낀 사람은 분명 나 혼자는 아니다. 알고 있었다.

 

 

 

몇 주전, 회사에서 몇 명을 해고하면서 피드백 세션을 CEO들과 했다고 한다.

공통적인 피드백 중 하나는 정해진 근무 시간보다 훨씬 많이 일할 것을 강요받는 느낌이 있었다는 것.

 

 

팀장이 물어왔다. 

너도 그렇게 느꼈니?

최대한 솔직하게 답했다 (직장인에게 100% 솔직함이 가능은 한가?)

너에게서 직접적으로 강요받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어.

하지만 네가 매일 저녁 9-10시까지 일하고, 다른 팀장들도, 다른 팀원들도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하는 게 보여서 나도 내 임무를 대충 할 수는 없었어.

 

 

솔직히 팀장에게서 기대한 건

그래? 앞으로 그런 부담 절대 느끼지 말고 최대한 10시간 안에 업무를 마치기로 하자

이런 결의 대답이었다.

이게 내가 기대하고 이민까지 온 유럽 국가의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독일인의 지킬 건 지킨다 마인드니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피드백받고 나서 다른 팀장들이랑 CEO들이랑 이야기를 해봤어.

근데 회사가 10시간 일하는 만큼의 월급을 주지만 네가 받는 금액은 원래 월급의 70%가 넘잖아.

그러니까 우리 받는 만큼 일하는 게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해봤어.

 

 

잠깐, 이게 무슨 소리지

잠시 말문이 막혔다.

팀장들과 CEO들 모두 지킬 건 지키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 좋아했었다.

우리는 모두 하나야! 가족과 같지!

독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한국의 가좆과 같다 그런 마인드는 아닌 것 같아 좋아했었다.

다들 노동자의 권익이 중요하다는 독일과 영국 출신이 아니었나.

 

 

노 라는 대답은 결국 하지 못했다.

어쨌든 이미 10시간 이상으로 일하고 있었으니까.

잘릴까 봐 거절하지 못한 건 아니었는데 순간 머릿속이 헝클어지는 느낌.

독일에서도 이런 게 있구나. 

우리가 너의 노동력을 제공받으면서 지불하는 건 10시간만큼의 월급이지만

네가 받고 있는 월급은 훨씬 더 많으니까, 그만큼 일하자. 어때?

하지만 그만큼 받는 월급은 내가 세금을 40% 가까이 내고 

받고 있는 몇 안 되는 혜택들 중 하나인데 왜 회사가 거기에서 생색을 내는 거지?

 

 

내가 이상하고 비뚤어진 건가 

배가 불러서 그런 건가

며칠 동안 생각했다.

 

 

그러다 어제는 이전 회사의 팀장, 그리고 현 회사의 마케팅 팀장을 소개해준 J를 만났다.

J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다.

그거, 누가 관련 기관에 알리기라도 하면 회사가 큰 일 날걸?

그렇지? 나만 그게 석연치 않았던 게 아니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드디어 아군을 만난 듯 든든해졌다.

 

 

이번 주에는 팀장이 말했던 대로 받는 만큼 일했다. 10시간보다 훨씬 더.

앞으로는 어떻게 할까.

가만히 있기에는 이상하게 그리고 미묘하게 불편해서

가만히 있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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