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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직장생활] 스타트업 선택하기 - 어떤 규모의 회사가 좋을까

베를린의 흔한 자동차

 

 

규모가 다른 스타트업들을 몇 군데 거치고 나서 

스타트업도 다 같은 스타트업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규모에 따라 그리고 성장 속도에 따라 

내가 해야 하는 업무, 얻을 수 있는 배움의 범위나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현재 내 커리어 path에서 어디에 있는지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싶은지에 따라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도 달라질 수 있다.

 

 

 

첫 회사, 독일 큰 미디어 기업을 자회사로 둔 20명 남짓의 작은 스타트업.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사업 개발팀의 인턴으로 시작했다.

사업 개발팀에 속해있다고 말은 하지만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이런 건 의미가 없었다.

사업 개발도 하고, 고객 관리도 하고, 마케팅 캠페인도 직접 돌리고, 리포팅도 하고.

IT나 법무 관련 등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부문은 본사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는 팀에 상관없이 다들 하는 일이 비슷했다.

 

내 경험상, 이만큼 작은 스타트업은 한 사람이 이처럼 많은 일을 하고, 여유가 그다지 없다. 

당시 나는 인턴이었고, 다른 유럽에서 온 인턴들처럼 이미 학생 때 

인턴을 해보고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배웠어야만 했다.

정말 실수도 많이 하고, 자책도 많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보통 상사가 하나하나 가르쳐 줄 시간이 없다.

자기 일만으로도 너무 바쁘고, 상사는 정말 일당백을 해내고 있기 때문에.

자기 시간을 어떻게든 쪼개서 가르쳐주는 상사도 있긴 하겠지만

내 상사는 그렇지 않았고 나는 당시에 눈치도, 일머리도 없어서 상당히 힘들었다.

경험이 전혀 없는 신입이라면 이렇게 작은 스타트업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두 번째 회사, 300 - 400명 규모의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스타트업.

 

마케팅 팀의 주니어 포지션으로 입사해서 2년 조금 넘게 일했다.

팀에 막 합류했을 때는 4명 정도의 마케팅 팀이었지만 그만두기 전에는 15명 가까이 되었다.

그래도 이제 짬밥 좀 먹었다고 기본적인 일머리가 생기고, 나만의 원칙 같은 것도 생겼다.

전혀 모르는 분야의 업무도 구글링을 하다보면 어느 정도 배울 수 있다던가,

그래도 정 모르겠으면 솔직하게 상사에게 모르겠다고 꼭 물어본다던가,

못할 것 같은 업무도 일단은 해보면 결과가 나오고, 거기에서 또 배울 것이 있다던가.

 

이 단계에서 여러 조건들이 충족되어서, 스스로가 보기에도 상당히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일단, 좋은 상사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

나에게는 정말 득이 되었던 이 상사는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경력은 훨씬 길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뭐든지 꼼꼼하고 엄격하게 체크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직설적으로 피드백을 줬다.

가끔은 이런 것까지 확인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고, 너무 직설적으로 면박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신경 쓸 일들이 너무 많은 직책이었는데도 작은 문서,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당시 주니어 포지션이었던 나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회사가 당시 적당한 규모로, 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도 나에겐 좋았다.

성장을 하고 있어서 마케팅 팀이 운용 가능한 budget이 너무 타이트 하지 않아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그것도 데드라인이 너무 빠듯하지 않아서 나 혼자서도

조금은 여유있게 배우면서 해나갈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있었다.

회사 규모가 작은 채로 멈춰있으면 운용 가능한 budget이 주어지지 않아서 힘들고

회사가 너무 빨리 성장을 해도 프로젝트들이 너무 빠르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느낌이라 힘들다.

그 시기에 그 규모의 회사에서, 그 상사와 일할 수 있었던 건 좋은 기회였다.

 

 

세 번째 회사, 15 - 20명 규모의 신생 스타트업.

 

코로나 터지자 마자 조인해서 일 년 남짓 일했던 회사는 대표들까지 포함해서 

20명이 안되는 신생 스타트업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면접을 봤고 대표들도 좋아 보였고 연봉이 기대보다 꽤 높았다.

코로나 단축 근무로 계약서에 적혀있었던 월급을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지만 하하

 

시니어 포지션으로 들어갔는데 회사가 너무 신생이라 여기에서도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많았다.

적은 인원으로 이것 저것 해야 할 것이 많고, 또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지쳤다.

이 외에도 너무 작은 스타트업은 나와 맞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사람.

상사와 나 뿐인 마케팅 팀에서 상사를 신뢰하기 힘들어지자 일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장점이 있다면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내 몫이라는 것.

혼자서 배우고, 일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렵게만 느껴지던 업무를 해나가다 보면

큰 회사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해놓거나 같이 해서 알기 힘들었던 부분들까지

내가 하기 때문에 뭐든지 간에 이해의 폭이 많이 넓어진다. 보람도 있다.

이런 부분에서 뿌듯함을 많이 느끼는 경우라면 신생 스타트업이 잘 맞을 것 같다.

 

 

네 번째 회사, 24개국에 진출해 있는 대규모 스타트업.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규모면에서는 상당히 크고, 계속해서 성장 중이다.

바로 전에 근무했던 회사는 직원들을 모두 합쳐서 스무 명이 안되었는데 

이번 회사에서는 소속되어 있는 팀원들만 해도 스무 명이다. 다른 팀들도 셀 수 없이 많다.

 

팀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현재 말할 수 있는 것은

바쁘다, 정말 미친 듯이 바쁘다.

기회가 많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누군가 이미 해두었거나 아니면 하고 있다.

 

배우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팀 멤버들이 있다.

그런데 배우고 싶어도, 그걸 다 소화할 시간이 없다. 주어진 업무들 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간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고, 그것을 다 해낼 시간과 체력이 있다면 더없이 좋은 환경.

워라밸이 중요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환경이 중요하다면 많이 힘들 것 같은 환경이다.

 

 

개인적으로는 작은 스타트업은 맞지 않는 것 같다. 길잡이가 없이 내가 모든 것을 해나가는데

이게 맞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는 느낌도 싫고 사람 때문에 갈등이 생길 때 도무지 피할 수 없는 것도 힘들다.

적당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간 규모의 스타트업이 일을 배우기에는 가장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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