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에 한국에 들어와서 거의 4월 마지막 날에 출국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이 날짜는 5월 1일로 변경이 된다 하하하하)
한 달 정도를 한국에서, 부모님 댁에서 있었다.
2주 동안 격리를 해서 집에만 있었는데도
넓은 집에서 지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날씨도 따뜻했고 그래서 삶의 질이 높아지고 그랬다.
돌아오던 그 주의 삼, 사일을 제외하고는
한국에 있는 기간 내내 독일 시간에 맞춰서 일했기 때문에
거의 한 달 가까이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 있었던 것 같지 않았다.
야금야금 시간이 잘만 가서 리턴 티켓에 찍힌 날짜가 다가왔다.
4월은 사실 당시 근무 중이던 회사에서의 마지막 달이었고
5월부터는 새 회사에서 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동안 쓰지 않았던 휴가를 3일 정도 쓰면 조금 일찍 퇴사가 가능했다.
그 휴가 기간 동안 서울에 가서 하루 정도 자고 독일 가는 비행기를 타서 주말에 도착.
주말 동안 여독 좀 풀고, 시차 적응하고
월요일부터 가뿐하게 일을 시작한다는 큰 그림. 퍼펙트!
새 회사에는 뭐 굳이 말을 해야 하나 싶어서 4월에는 한국에 다녀온다고 말하지 않은 상태.
고향에서 미리 항원 검사를 받아서 다음날 아침에 영문 결과서를 받아 들고
엄마랑 점심을 먹고 서울 가는 KTX를 탔다.
회사에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놓아주지 않아서 결국 일정이 꽤 타이트해졌다.
가자마자 친구를 서울역에서 만나서 2시간 안에 저녁을 먹고,
공항 철도를 타서 또 다른 친구를 철도 안에서 만나서 같이 공항에 가서 커피 한잔.
그리고 자정 비행기를 타고 빠빠이.
친구들을 만나고 공항까지 오는 것까지는 매우 스무스했다.
친구와 공항에서 수다를 떨면서 체크인 줄이 좀 줄어들 때까지 기다렸는데
사람들이 조금조금씩 끊이지 않고 줄에 합류해서
10시를 좀 넘겨서는 일단 체크인을 하려고 우리도 줄을 섰다.
사실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었다.
독일이 코로나 검사 시점부터 독일 입국 시점까지 48시간 이내여야 한다는 규정을 새롭게 만들었고,
아무리 병원에 전화를 해봐도 모두들 오후 5시 즈음이면 테스트를 종료해서
최대한 늦게 받은 검사 시점에서도 독일 입국은 49시간이 조금 넘을 수밖에 없었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감격스러울 정도로 친절한 직원분께서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하셨다.
첫 번째,
우려했던 대로 48시간 규정에 조금 어긋난다는 것.
두 번째,
예약을 할 때 이름과 성이 바뀌어서 처리되었다는 것.
놀란 나를 안심시키려는 건지 48시간이 조금 넘어서 문제없이 들어간 케이스들이 있고
성과 이름이 바뀌는 건 좀 흔한 일이라 보통은 도착할 나라에서 입국 거절을 해도
내 탓이며 항공사 탓을 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면 괜찮다고 하셨다.
성과 이름을 바꿔 적으신 고객님이 한 분 더 계신데
저희 직원이랑 같이 한 번 더 확인하러 출국장(?)에 있는 법무부 직원께
확인하러 갔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근데 아마 괜찮을 거예요.
몇 분이 지나고 직원과 함께 돌아오는 그분의 얼굴이 괜찮지 않았다.
오이씨.
큰일 났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고객님.. 보통이라면 괜찮은 상황인데 지금 시국이 시국인지라
법무부에서 성과 이름을 바꿔 적은 한국인들을 안 내보내 주고 있대요.
지금 여기는 너무 늦어서 이 업무를 하는 부서가 문을 닫았어요.
빨리 본사가 있는 프랑스에 전화해서 요청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
나는 에어프랑스가 정말, 정말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와, 이름과 성을 바꿔 적은 이름 모를 남자분과 카운터에 있는 직원들과,
심지어 내가 빨리 전화해서 이 상황을 알게 된, 독일에서 내가 오길 기다리던 얀까지
모두 한 마음으로 에어프랑스 본사에 전화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십 분 안에 내가 전화 연결이 되었고
당연하게도 유럽 특유의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듣고는 그날 비행기 타기를 포기했다.
나랑 또 어떤 다른 고객이랑 이름과 성을 바꿔 적었어!
근데 여기 한국 법무부에서 우릴 한국에서 못 나가게 해서
그걸 바꿔야지만 나갈 수 있대!
근데 한국 오피스가 시간이 너무 늦어서 닫았어! 네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야!
구뤠? 렛 미 첵.. 흠.. 네가 그 바뀐 이름과 성으로 한국에 가는 티켓을 썼기 때문에
이건 게임 오바야. 우린 바꿔 줄 수가 없다. 돌아오는 티켓을 포기하던가 다시 사거라.
그 다른 고객은 아직 티켓을 안 썼지만 우린 바꿔 줄 수가 없다.
한국 지사에서 해야 함. 챠오!
유럽의 서비스를 잘 모르는 상태였다면 어떻게든 해보려 했겠지만
독일 짬밥 6년. 덴마크에서도 살아보고 다른 유럽 나라들도 많이 여행해봤다.
나는 유럽의 서비스 정신을 아는 사람.
그 통화 이후로 나는 포기하고 카운터의 친절한 직원에게
혹시나 만시나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뭔가가 있을지 물어봤다.
너무너무 안타까워하시면서 나에게 살포시 쥐어주신 에어프랑스 한국 지사 번호가
다음날 나를 살렸다.
아침 일찍 전화한 한국 지사의 또 황송스러울 정도로 친절한 직원분은
그게 뭐 대수냐는 듯 아주 친절하고 쿨하게 티켓을 이틀 후로 바꿔주셨다.
그리고 그 오후부터 또 테스트를 어떻게든 48시간 이내에 받아서
독일에 가겠다는 새로운 모험이 펼쳐졌다.
자세하게 쓰면 또 너무 길어지고, 눈물 나고 그러니까
해피한 엔딩만 쓰자면 여기저기 가능한 병원 다 전화를 해서
어떻게 저떻게 겨우 겨우 테스트 시점부터 독일 입국 시점까지 48시간 이내가 되도록
테스트를 받았고, 돈은 또 15만 원 정도 더 냈다.
쓰지 않아도 될 돈이었으니 아까웠지만 독일 또 못 가게 돼서 비행기 표를 다시 사거나,
새 직장에서 예정일에 근무를 시작 못하게 되고
사실 저 한국에 와 있었는데요 블라 블라 다 설명해야 하는 골치 아픈 상황보단
백 배 나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비행기를 타면서도 진짜 가는 건지
믿기 힘들었고 경유지인 파리에 도착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다가
파리에서 베를린 가는 비행기에서 긴장이 다 풀려서 아주 꿀 잠잤다.
베를린 돌아오는 게 이렇게 기쁠 수 있다니!
사실 결과만 보면 모든 게 잘 되었고 비행기를 놓친 덕분에 잠시 잠깐일뻔한 친구들과의
만남을 더 길게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도 이제는 성과 이름 체크 두 번, 세 번하는 습관이 생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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