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층간소음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한국 층간 소음이 그냥 커피라면
독일 층간 소음은 티오피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모르려나 호호)
집을 무슨 종이로 지었나.
내가 이렇게 종이로 지은 집에 월세를 이만큼이나 내고 살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층간소음이 가능한 집들이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베를린에서 네 번째 집.
첫 번째 집도 윗 집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소리가 다 들렸다.
아이들이 뛰어다는 것도 아니고 성인 남성이 걸어 다니는 소리가 정말 쿵쾅쿵쾅 들려서
자주 잠을 설쳤다.
두 번째 집은 윗 집도 윗 집이었지만
같은 층 이웃들에게서 들리는 소음이 어마어마했다.
내 방에서 잠을 청하려고 할 때가 되면 거의 매일 밤
옆 집 사람이 티비를 틀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대사 하나 하나가 다 들렸다.
영화를 보다가 자주 잠에 드는 모양이었는데
바로 내 옆에서 잠을 자는 것처럼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 있으면 깨우기라도 하지.
당시 집은 장기적으로 살 집을 알아보기 위해서
삼 개월만 살기로 하고 들어간 집이었는데
삼 개월만 살기로 해서 너무너무 다행이었다.
소음 말고도 어이없는 일들을 많이 겪은 집이라서
이사 나오던 날은 정말 우리 이제 다시 보지 말자
바람피운 걸 용서해줬는데 또 바람피운 남자 친구와 헤어지는 느낌으로
이제 이 동네에도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떠났다.
세 번째 집은 그래도 괜찮았다.
아마 윗 집 살던 수줍음 많던 커플이 조용히 생활해서
그렇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하지만 그 수줍음 많던 커플이 사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는
열정적인 커플이었음을 곧 알게 되는데,,
오이오이 대반전 스토리.
하지만 그 소리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는 조용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네 번째 집.
이사 온 첫 주에 도대체 어떤 사람이 살고 있길래
사람이 아니라 코끼리가 걸어 다니는 소리가 나는지
왜 밤 12시가 가까워오는데도 뭘 자꾸 던지고 끌고 다니는지
궁금하고 화가 나서 올라가봤다.
덩치 큰 독일인 중년 남자가
이제 곧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러니 좀 봐달라 했다.
그리고 일 이주일 밤새 끌고 던지던 소리를 내던 남자가 나가고
삼 년 가까이 윗 집에는 누군가 가끔 와서 청소하는 소리를 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았다.
베를린이 저렴하다는 말도 이제 정말 옛날 일이 된 것처럼
매 년 치솟는 베를린의 평균 월세에 얀과 나는 매번 놀라는데
그 말도 안 되는 가격도 기꺼이 내겠다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더 놀랍다.
사정이 이런데 이렇게 베를린 한가운데 비싸기로 유명한 지역의 집을
삼 년 가까이 빈 집으로 놔두고 있다니.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소음 프리로 살게 된 것에 매우 감사하며 삼 년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달.
누가 이사를 오는지 여러 사람들이 들락날락 거리고 뭘 옮기고 던지고 끌고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났고
막 이사 오는 거라 아직 정리하는가 싶어서 참기로 했다.
내려가고 들어오고 하는 모습을 보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 명 이사 온 것 같았다.
우리의 새 이웃은 발꿈치에 징을 박은 듯한 강려크한 걸음 소리로
걸을 때마다 소음은 물론, 집 전체가 울리는 경험을 선사해주셨고
베를린의 젊은이답게 밤늦게까지 테크노 음악으로 우리를 깨어있게 했다.
여자 친구가 없기를 바랐건만
부모님이 짐 정리를 해주시고 간 다음 날부터 여자 친구는 거의 매일 와서
새벽 3-4시까지 젊은이의 기상을 둘 다 지치지 않고 발휘했다.
토요일 새벽,
얀은 자고 나는 음악 소리와 둘의 둥기 둥가 소리에 4시까지 깨어있었던 그날.
이렇게는 못 산다고 날이 밝으면 저 녀석의 혼쭐을 내주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잠깐 우편함 앞에서 봤을 때
너무 싸움 잘하게 생긴 얼굴이라 무서웠지만
우와이씨 몰라몰라 나도 좀 살자 우어어엉
태어나서 싸움이라곤 해 본 적 없는 누가 봐도 순하디 순한 두부 같은 얀과 함께
윗 집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쉬워 보이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팔짱을 끼고, 겁나 짝다리를 짚고 서있었다.
문이 열리고, 얀이 우리가 올라온 이유를 설명하고
내가 한 소리 퍼부으려고 숨을 깊게 들이쉬는데
오 쏘리, 아임 뤼얼리 쏘리
싸움 잘하게 생긴 남자가
부모님께 막 혼난 소년 같이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미안하다고 한다.
태어나서 항상 집에서만 살았지 이렇게 누군가 아래 층 위층
살아본 적이 없어서 정말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표정을 보니 진짜 미안해하는 것 같다.
꼈던 팔짱을 풀고, 체중을 한 껏 실었던 짝다리를 고쳐 서고
그랬냐고, 이게 지어진지 100년이 된 플랫이라서
정말 소음이 상상 못 하게 심하다고
우리 이웃끼리 조심해서 살자는 말을 나도 모르게 했다.
바이 더 웨이, 마이 네임 이즈 슈테판.
나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슈테판이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도 말하지 않고 이 놈 시키 혼쭐을 내주겠다고
문을 열자마자 용건만 다다다 쏟아낸 우리 둘이 무안해졌다.
그리고 삼 일 즈음 지나서
슈테판이 줄 것이 있다며 가져온 게 저 와인.
그리고 슈테판은, 태어나서 주욱 하우스에서만 살아본 슈테판은
조금은 조심해서 걸으려고 하는 것 같고
여자 친구랑 둥기 둥가도 살살하고
늦어도 밤 11시면 음악을 줄인다.
아직도 걸어 다닐 때면 우리 집이 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말 미안하다고 했던 말이 정말 진심인 듯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 층간소음과 얼치기 없는 이웃들의 반응을 너무 많이 들어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몇 편이나 썼는지 모른다.
경찰을 불러야 하나,
데시벨 측정기를 사야 하나.
생각보다 원만하게 잘 해결된 것 같아서
얀도 나도 큰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말이 잘 통하는 이웃을 만나 다행이었지만
이번 계기로 플랫이 아닌 하우스를 사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암튼, 슈테판아 잘하고 있어. 이대로만 하자 당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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