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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Berlin_work

[20200130] 수술 준비를 시작하고, 전 상사를 만났다.

 

 

지난 2-3 개월 정도, 회사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고, 이 변화가 꽤 많은 것을 바꾸었다.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감사했던 (너무 완벽주의자라 힘들 때도 많았지만) 팀 리더 J가 회사를 그만두었고

J가 그만 두기 한 달 전쯤, J와 나 사이에 중간 다리를 해줄 시니어 포지션으로 K가 들어왔다.

 

불과 2 -3 주가 지났을 뿐인데, K가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은 강하게 왔고,

이거 좀 큰 일인데 싶다가도 조금 더 지켜보자 하는 사이,  새 팀 리더가 일을 시작했다.

그가 새 업무를 익히느라 바쁜 틈을 타서 K는 본격적으로 실수를 하고, 참신한 변명들을 만들어냈다.

 

K가 도대체 어떻게 일을 하는지 아는 것은 나 뿐.

이 어매이징한 일 처리를 보고 감탄할 사람도 나 뿐.

이 아찔한 비밀을 혼자만 간직하기는 싫은데, 딱히 나눌 사람도 없고 참.

 

결국 개인 면담을 하고, 팀 리더가 개입되어서 셋이서 함께 미팅을 해도

그닥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다 사실은.

 

 

 

예전에 처음 인턴 생활을 시작했을 때, 스스로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서

훨씬 먼저 사회 생활을 시작한 친구에게, 나는 왜 일을 이렇게 못할까 했더니

친구는,

괜찮아. 일을 못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만으로 일을 못하는 게 아니란 증거다.

진짜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일을 못하는지도 모른다.

했었다.

 

와 젠장, 맞는 듯.

지가 일을 못하는지를 모르네, 

자기가 일을 못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은 그 눈빛이 진짜 신기했다.

 

결국 이제는 모든 것을 문서화 해두지 않은 나를 탓하고,

빨리 일을 처리한 나를 탓하고 (니가 그 파트너와 항상 커뮤니케이션하니까 내가 끼어들 틈이 없다),

내가 해둔 작업을 자기가 한 것처럼 weekly JF에서 팀 리더에게 보여주고,

자주 자주 미팅이나 이메일에서 독일어로 바꿔버리거나, 나를 email loop에서 빼버리고,

내가 자꾸 실수하는 걸 잡아내니까 그런 것 같은데, 무슨 강아지가 똥싸고 덮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이런 저런 문제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서 도저히 무리다 

그런 느낌과 타이밍이 왔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학교, 회사를 가는 것이다!

그런 어머님의 가르침과 함께 살아온 나로서는 다리가 반쯤 부서진 것도 아닌데

멀쩡한 모습으로 병원엘 가서 스트레스 때문에 회사를 못 간다고 말하기가 이상했다.

의사는 의외로 순순히(?) 일주일 정도 병가를 내주었고, 스트레스 완화에 좋다는 마사지 법을 함께 알려줬다.

 

그렇게 어제부터 회사를 안가고, 

오늘은 좋아하는 그 전 상사 J를 만났다.

 

어제부터 회사를 안갔어.

무슨 일이야?!

 

K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말했더니

" She is not the smartest person in the world, that's what I felt for a short time with her.

  She says a lot of things, but in the end, she doesn't do anything and doesn't understand anything."

J가 말했다.

 

맞아, 이래서 내가 J를 좋아했었지, 모든 것을 명쾌하게 만드는 사고, 화법, 명석함.

" She is not the smartest person in the world"

직역하자면, 걔가 그렇게 똑똑한 사람은 아니잖아. 그런 느낌인 것 같은데

뭔가 어떤 의미에서는 걔 멍청하잖아 보다 더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에게는.

J가 그 말을 하는 순간,

내가 혼자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는, 내가 틀린 게 아니었다는 안도감과

내가 정말 인정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해주었다는 것에서 오는 확신으로

이상하게 기뻤다.

이래서 사람이 돈 없이는 살아도 억울하면 못산다고,

 

점심을 하는 도중 팀 멤버를 구하는 자기 친구들에게 바로바로 연락을 돌려 내 linkedin 주소를 알려준 후

헤어질 때, J가 말했다.

"Stay strong, don't let them you down."

우리 시스터후드 장난아니네. 

 

 

수술 예약을 했고, 정식으로 다시 구직 활동을 시작했고, 비자 문제는 다음 주에 해결될 것이고.

하나 하나씩 정리해간다. 많이 스트레스 받았던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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